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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커피를 내려보겠다고 마음먹으면 제일 먼저 부딪히는 게 가격이다. 검색하면 3만원짜리 입문 세트도 나오고 30만원짜리 조합도 나온다. 열 배 차이다. 그런데 이 열 배가 맛의 열 배는 아니다.
결론부터 적는다. 3만원과 30만원의 차이는 대부분 그라인더 한 대에서 나온다. 드리퍼도 포트도 저울도 맛을 바꾸지만, 바꾸는 폭이 그라인더와 비교가 안 된다. 예산이 빠듯하면 다른 데를 줄이고 여기에 몰아야 한다.
왜 그라인더인가
원두를 갈면 가루가 나온다. 이 가루의 크기가 고르면 물이 모든 입자에서 비슷한 속도로 성분을 뽑아낸다. 고르지 않으면 큰 입자에서는 덜 뽑히고 작은 입자에서는 너무 뽑힌다. 한 잔 안에 덜 익은 맛과 탄 맛이 같이 들어간다.
이게 흔히 말하는 “뭔가 밍밍한데 끝맛은 쓴” 상태다. 원두를 바꿔도 안 고쳐진다. 물 온도를 만져도 안 고쳐진다. 입자가 안 고른 게 원인이기 때문이다.
칼날식 분쇄기는 이 문제의 극단이다. 원두를 자르는 게 아니라 때려 부순다. 가루와 덩어리가 같이 나온다. 가격은 만원대지만 여기서 시작하면 커피가 원래 이런 맛인 줄 알게 된다. 그래서 예산이 아무리 적어도 버(burr) 방식은 지키는 게 낫다.
3만원으로 짤 수 있는 구성
- 수동 버 핸드밀
- 드리퍼와 종이 필터
- 서버 대신 머그컵
빠진 건 저울과 온도 조절 포트다. 없어도 커피는 나온다. 대신 매번 다른 커피가 나온다.
이 구성의 진짜 장점은 가격이 아니라 버려도 아깝지 않다는 데 있다. 홈카페가 나랑 안 맞는다는 걸 3만원에 알아내는 건 나쁜 거래가 아니다.
단점은 손목이다. 한 잔 분량을 손으로 갈면 1분 가까이 걸린다. 하루 한 잔이면 견딜 만하고 두 잔부터 슬슬 귀찮아진다. 매일 아침 두 잔을 내리는 집이면 여기서 오래 못 간다.
30만원으로 짤 수 있는 구성
- 전동 그라인더
- 드리퍼와 서버
- 온도 조절 포트
- 저울
돈이 어디로 갔는지 보면 명확하다. 그라인더가 예산의 절반 이상을 먹는다. 나머지는 재현성을 사는 데 쓴다.
재현성이 왜 중요한가. 어제 맛있게 나온 커피를 오늘 똑같이 내릴 수 있어야 무엇을 바꿀지 판단할 수 있다. 저울이 없으면 원두를 몇 그램 썼는지 모르고, 온도계가 없으면 물이 몇 도였는지 모른다. 매번 결과가 달라지는데 원인을 모른다. 그러면 실력이 안 는다. 이 얘기는 저울 없이 커피 내려도 되나에서 더 다뤘다.
그래서 어디에 서야 하나
3만원에서 시작해도 되는 사람
하루 한 잔 이하로 마신다. 커피를 취미로 삼을지 아직 모르겠다. 캡슐이나 인스턴트에서 막 넘어오는 단계다.
바로 전동으로 가야 하는 사람
하루 두 잔 이상 마신다. 원두를 이미 정기적으로 사고 있다. 손님이 오면 커피를 내려주는 편이다. 이 경우 핸드밀은 반년 안에 중고로 나온다. 두 번 사는 셈이다.
중간이 있다
그라인더만 전동으로 올리고 나머지는 3만원 구성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저울과 포트는 나중에 붙여도 늦지 않다. 순서가 중요하다. 그라인더가 먼저다.
수동과 전동 중 어디에 서야 하는지는 핸드밀 vs 전동 그라인더, 어느 쪽을 사야 하나에서 조건별로 갈라 뒀다.
흔한 실패 두 가지
하나. 머신부터 산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먼저 사고 그라인더는 저가로 맞추는 조합이 제일 자주 실패한다. 에스프레소는 드립보다 입자 요구가 훨씬 까다롭다. 저가 그라인더로 에스프레소를 내리면 머신 성능이 통째로 묻힌다.
둘. 원두를 뒤로 미룬다. 장비를 다 갖추고 로스팅 날짜도 안 적힌 원두를 쓰는 경우가 많다. 오래된 원두는 무슨 장비를 써도 못 살린다. 장비값의 10분의 1을 원두에 쓰는 편이 훨씬 낫다. 산 원두를 어떻게 두느냐도 같은 무게로 중요한데, 그건 원두 보관, 지퍼백으로 충분한 경우와 아닌 경우에 정리해 뒀다.
정리
| 3만원 구성 | 30만원 구성 | |
|---|---|---|
| 그라인더 | 수동 버 핸드밀 | 전동 버 그라인더 |
| 계량 | 눈대중 | 저울 |
| 물 온도 | 감 | 온도 조절 포트 |
| 하루 두 잔 | 손목이 버틴다 | 편하다 |
| 재현성 | 낮음 | 높음 |
돈을 아끼고 싶으면 저울과 포트를 미루면 된다. 그라인더를 미루면 아낀 게 아니라 미룬 것이다.
구성별로 볼 만한 물건
아래 셋은 위 기준에 맞는 가격대를 고른 것이고, 설명은 제품 사양과 공개된 사용자 평가를 기준으로 쓴 것이다. 가격과 재고는 수시로 바뀐다.
Baristar 수동 원두커피 그라인더
3만원 구성의 중심. 수동 버 방식이라 칼날식과 입자 균일도가 다르다. 하루 한두 잔까지가 현실적인 범위다.
가격과 재고는 수시로 바뀐다. 링크에서 현재 값을 확인할 것.
위즈웰 커피 그라인더 WSG-9100
하루 두 잔 이상 마시면 여기서부터 손목 문제가 사라진다. 다만 칼날식이라 균일도가 아니라 속도와 편의를 사는 쪽이다. 핸드드립 재현성이 목적이면 전동 버 방식을 봐야 한다.
가격과 재고는 수시로 바뀐다. 링크에서 현재 값을 확인할 것.
아쿠바 커피저울 CS-5010
저울은 맛을 바꾸는 물건이 아니라 어제 맛을 다시 만들게 해주는 물건이다. 타이머가 붙어 있으면 추출 시간까지 한 번에 본다.
가격과 재고는 수시로 바뀐다. 링크에서 현재 값을 확인할 것.